(협회 입장문) 방송사 상생협력안에 대한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의 입장
등록인 : 관리자 l


방송사 상생협력안에 대한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의 입장

생색내기상생안이 아니라 진정한 동반성장안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이제 새로운 시대의 분수령에 서있다. 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내일을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정의로움과 공정함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은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의 수직적 권력 구도를 진정한 동반성장의 관계로 전환하기를 요구한다. 그 하나로서 오랜 불공정 관행에 시달려온 방송 외주제작산업의 현실이 역사상 일찍이 없던 주목을 받고 있다.

방통위를 비롯한 정부5개부처가 합동으로 나서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한 가운데, MBCCJ E&M이 자발적으로 콘텐츠 상생협력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내용에는 우려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서둘러 발표한 상생안은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한 실효 없는 '생색내기'이거나 '변죽만 울리는' 미봉책이라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312일 발표된 MBC ‘콘텐츠 상생협력 방안의 주요 골자는 외주제작 인력의 인권보호와 안전 강화, 인건비 및 제작비 인상, 촬영 원본 사용권 확대 등이다. 외주제작 인력의 인권보호와 안전 강화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이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큐멘터리 장르에 한정된 것이나 원본 사용권을 인정하고, 향후 저작권 배분을 늘려가겠다고 밝힌 것도 전향적인 조치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 중 제작사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제작비 인상안은 실제적인 제작비 현실화와는 거리가 멀다. MBC9개 외주 프로그램의 제작비를 3~15% 인상한다고 밝혔는데, 편당 수십만원에서 최대 100만원 정도가 인상된 셈이다. 그런데 이 인상분으로는 제작인력의 최저임금 상승분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MBCA프로그램은 편당 제작비에서 418천원이 인상되었다. 그동안 제작사는 모자란 제작비로 1시간짜리 ALL ENG 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들 방법이 없어서 최대한 경력이 낮은 인력을 구하고 최대한 머리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쥐어짜듯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는 조연출도 두지 못했는데, 418천원이 인상되어도 여전히 조연출은 두지 못한다. 연출 인력의 인건비 보전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B프로그램은 편당 100만원이 인상되었다. 그나마 인상률이 그중 나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 프로그램은 1시간짜리 스튜디오에 4꼭지의 비디오가 배치되는 매일 방송물이라 전체 제작인력이 12명에 달한다. 이중 제일 막내인 조연출과 보조작가의 임금을 최저임금에 맞추어 인상하면 비례하여 그 위 선배들의 인건비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제작비에 목이 졸리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여기다 방송사에서 자체 기용한 외부인력의 인건비를 올리면 제작사의 인건비 압박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328일 발표된 CJ E&M방송산업 상생방안의 경우는 더 참담하다. 여기에 담긴 것은 비정규직(파견직, 프리랜서 등) 인력의 정규직 전환이나 방송작가 집필계약서 제정체결 의무화, 방송 스탭 처우 개선 등 방송사 자체의 외부인력 활용방안과 근무환경에 관한 것들 뿐으로, 실제로 외주제작사와의 상생 방안은 거의 전무하다. 관련된 내용이 있다면 단 한 가지 정부가 권고하는 표준계약서를 도입, 계약 내용 그대로를 반영하겠다는 것이 유일하다.

CJ E&M은 미디어 업계에서 날로 팽창하는 공룡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외주제작사에 대한 문호 개방에는 지극히 인색해온 것이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부분 외주 무늬 외주의 편법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고, 이 작은 시장에 자회사를 만들어 투입함으로써 외주제작사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해왔다. 거대재벌이 골목 빵집의 상권까지 싹쓸이하는 탐욕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CJ E&M에게 제작사와의 상생 의지가 과연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생의 방향을 모색하는 이들 방송사의 태도에서 우리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본다. 특히 KBS, SBS, EBS와 종편 4사가 다같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 중에서 가장 먼저 자발적으로 상생 협력의 뜻을 표명한 MBC의 의지를 높이 사며, 향후 더 나은 미래를 함께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재 우리 제작사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그러나 우리는, 방송사들이 여전히 의 위치에서 베풀어주는 시혜적 조치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의와 근면에 기반한 우리의 합당한 권리를 요구하며 진정한 동반 성장의 기회를 원한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함께 할 때만이, 실제적인 콘텐츠 강국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촉구한다.

 

1. 제작비를 현실화하라

외주 제작비는 지난 10여년간 제자리걸음이거나 퇴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제작사들이 현실 앞에 백기를 들고 고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제작인력의 최저임금 보장과 근로환경 개선이 시급한 지금의 상황에서 이를 담보할 제작비 현실화는 최우선의 과제이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제작비 현황에 대한 엄격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기초로 방송콘텐츠를 장르별 유형별로 구분하고 모든 제작요소의 기준금액을 구체적인 범위로 제시한, 합리적인 표준제작비가 책정되어야 한다. 이 표준제작비는 방송사와 방송영상제작사협회의 협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협상 테이블은 매년 정례화되어야 한다.

외주제작비는 방송사 내부 제작비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며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간접비를 포함해야 한다.

 

2. 저작권을 보장하라

그동안 제작사들은 방송사의 우월적 지위에 기반한 반강요로 모든 저작권을 방송사에 양도해왔다. 원본을 활용하여 2차 저작물을 만들거나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의 선례를 보고 원칙을 돌아볼 때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제작사에, 방송권은 방송사에 있음을 천명한다. 1차 저작권은 일정기간 방송사에 권리가 임대되는 것이며, 제작기여도에 따라 수익은 배분되어야 한다. 이때 제작사가 유치한 협찬이나 정부 제작지원금은 제작사의 투자분으로 간주되어야 된다.

우리의 이런 요구들은 느닷없는 것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콘텐츠 선진국인 영국에서 이미 십수년 전부터 시행해오고 있는 것이다.

 

3.협찬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용하라

협찬은 방송법 시행령과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에서 정한 바 외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편법이 횡행해온 영역이다. 협찬제도의 미비점을 악용하여 방송사의 수익창구로 이용해온 사례가 너무나 많다. 모자라는 제작비를 메꾸어보려 협찬을 유치했던 제작사들의 노력은 협찬금에 비례한 제작비 감액이나 협찬 배분 요구 앞에 물거품이 되곤 했다.

정부 제작지원을 받은 작품들에 합당한 방송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무료 방송을 요구해온 관행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엄격한 외부 규제가 필요한 것은 물론, 방송사 자체에서도 이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최소한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공정한 거래환경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방통위가 중심이 되어 내놓은 정부 5개부처의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에는 이런 제작사들의 문제의식이 비교적 잘 반영되어있다고 평가한다.

우리는 방통위에서 추진하는 외주제작 가이드라인 제정을 강력 지지하며 이에 제작사들의 의견이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에 따라 방송사가 제작시간 계획표, 저작권 귀속, 제작비 산정 및 지급방식 등을 포함한 규약을 작성하여 제작사와 계약시 준수토록 하는 내용, 방송사-제작사간 자의적 협찬 배분, 저작권 양도 강요, 계약서 작성 거부 등의 부당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금지행위 신설 등의 내용으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는 데 대해서도 적극 동의하고 지지한다.

궁극적으로 방송법이 개정되어야만 문제의 근본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송사들도 제작사들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적대적의 관계가 아니며, 권력의 상하관계도 아니며, 수탈과 착취의 관계도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콘텐츠산업에서의 동반자이며, 창의산업에서의 건전한 경쟁자이며, 오래된 비정상의 시대를 끝내고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작업에 있어 동지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송법 개정에 앞서 방송사들이 먼저, 보다 전향적으로 외주제작산업의 불공정 관행 타파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모두가 꿈꾸는 완전히 새로운 방송, 그 방송은 외주제작사와의 완전히 새로운 관계 정립이 포함되어야만 온전히 꽃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18411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